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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대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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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언어가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기록을 하다 보면 언어의 무력함을 체감하는 순간이 더 많다.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웅장한 풍경이나, 설명하기 힘든 아련한 그리움, 혹은 말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서글픔 같은 것들 말이다. 머릿속에서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각들이 펜 끝을 통과하는 순간, 고작 몇 개의 단어로 박제되어 버리는 것을 볼 때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언어의 빈틈을 실패가 아닌, 기록이 남겨둔 고유한 여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어는 본래 규정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슬프다'는 단어를 적는 순간, 내 마음의 그 깊고 넓은 감정은 '슬픔'이라는 틀 안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훨씬 더 미세한 결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여러 감정이 층층이 겹쳐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억지로 단어 안에 가두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그 문장 주변에 머무는 공기와, 단어와 단어 사이의 행간을 가만히 응시한다. 다 적지 못한 마음은 그 여백 속에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기도 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한계를 마주할 때 내가 선택하는 방식은 '비유'와 '묘사'를 빌려오는 것이다. "기분이 좋다"는 직접적인 고백 대신, "마치 숲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맑은 옹달샘을 본 듯하다"는 식의 우회적인 문장을 적어본다.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헤매는 그 과정 자체가 실은 내 마음의 형체를 더듬어가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비록 완벽한 정답을 적지는 못하더라도, 그 주변을 맴돌며 정성껏 써 내려간 문장들 속에는 언어 그 이상의 진심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적지 않음으로써 기록을 완성하기도 한다. 도저히 문장으로 옮길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이 찾아올 때, 나는 수첩의 한 페이지를 비워두거나 짧은 마침표 하나만을 남긴다. 그 텅 빈 공간...

기록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일상의 미세한 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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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뒤, 나의 일상에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창한 삶의 변화는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소음으로만 치부했던 주변의 소리들이 각기 다른 질감의 문장으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록은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선물해 주었고, 그 렌즈를 통해 본 하루는 이전보다 훨씬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관찰의 태도'였다. 기록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식적인 노력이 시작되자, 단조롭던 출근길조차 탐험의 대상이 되었다. 매일 오가던 길가에 새로 돋아난 이름 모를 풀꽃의 색깔, 계절에 따라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며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계절감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록이라는 목적지가 생기자, 흘러가 버리던 시간은 붙잡아야 할 소중한 장면들로 변모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하루가 나의 시선에 의해 능동적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한 셈이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전보다 유연해졌다. 예전에는 불쾌하거나 우울한 기분이 찾아오면 그 감정에 매몰되어 하루를 그르치곤 했다. 하지만 기록을 시작한 뒤로는 그 불편한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답답함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단어로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파도처럼 몰아치던 감정은 잔잔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감정을 통제하려 애쓰기보다 기록을 통해 그 실체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나 그가 보여준 사소한 배려를 기록하다 보면, 당시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진심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무심코 던진 농담 속에 담겨 있던 격려나, 말 한마디보다 깊었던 침묵의 의미를 문장으로 정리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하루를 마무리하며 짧은 기록을 남기는 습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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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했던 하루가 저물고 방 안의 조명이 낮아지면, 비로소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문 밖의 소음은 잦아들었지만, 정작 내면은 하루 동안 마주했던 수많은 문장과 감정의 잔상들로 여전히 소란스럽기 마련이다. 이때 수첩을 펼쳐 짧은 기록을 남기는 행위는, 단순히 일과를 복기하는 일을 넘어 어지럽게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정갈하게 갈무리하는 의식이 된다. 오늘이라는 한 권의 책을 덮기 전, 마지막 장에 마침표를 찍는 이 습관은 나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평온을 가져다 주었다. 기록을 습관으로 삼기 전에는 하루의 끝이 늘 모호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오늘 못다 한 일들에 대한 미련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내일의 부담감이 그림자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단 몇 줄이라도 종이 위에 오늘을 옮겨 적기 시작하면서 하루를 '매듭짓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라는 명확한 선언을 지면 위에 남기는 순간, 마음속을 떠돌던 부채감은 비로소 안식처를 찾는다. 완벽하지 않았던 하루일지라도 기록이라는 형식을 통해 매듭짓고 나면, 비로소 오늘을 온전히 보내줄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난다. 이 습관의 핵심은 거창한 문장을 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점심 무렵 마주했던 따뜻한 햇살의 질감, 우연히 들려온 음악의 멜로디, 혹은 누군가와 나누었던 짧지만 다정했던 인사 같은 것들이다. 대단한 성취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미세한 틈새에서 발견한 기쁨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하루가 사실은 꽤 다채로운 색채로 채워져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기록은 휘발되기 쉬운 일상의 가치를 붙잡아 두는 가장 소박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기록을 통해 얻는 또 하나의 소중한 선물은 내면의 '여백'이다. 적어두지 않은 생각들은 잊히지 않으려 스스로를 부풀리며 마음의 공간을 차지하지만, 글로 옮겨진 생각들은 그저 종이 위의 활자로 고요히 머문다. ...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하루의 리듬을 바꾸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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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몸이 무겁고 일상의 속도가 어긋난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특별한 갈등이나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눈앞의 일들이 삐걱거리며 평소보다 두 배의 노력을 요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날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김없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질서 없이 맴도는 생각의 파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내면의 흐름이 잡히지 않았을 때, 그 혼란은 아주 미세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의 하루 전체를 잠식하며 고유한 삶의 리듬을 뒤흔들어 놓는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가장 먼저 '집중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머릿속에서 순서 없이 뒤섞여 있을 때, 우리는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한다. 서류를 읽으면서도 마음은 오후의 미팅을 걱정하고, 차를 마시면서도 어제 다 끝내지 못한 대화의 조각들을 곱씹는다. 이렇듯 마음이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하루의 리듬은 잘게 쪼개지고 파편화된다. 리듬이 깨진 하루는 물 흐르듯 흐르지 못하고, 마치 끊어지는 필름처럼 부자연스러운 긴장감을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내면의 소란은 신체적인 반응으로도 이어진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호흡은 나도 모르게 얕고 가빠진다. 마음이 감당해야 할 보이지 않는 생각의 무게가 임계점에 이르면, 우리의 몸은 그 긴장을 고스란히 흡수하여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부드럽게 넘겼을 타인의 사소한 요청에도 쉽게 예민해지거나, 아주 작은 장애물 앞에서도 크게 당황하게 되는 것은 내 안의 여유가 이미 무질서한 생각들을 붙들고 있느라 소진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속에서 가장 안타까운 변화는 '감각의 실종'이다. 머릿속이 복잡한 날에는 계절이 바뀌는 창밖의 풍경도, 길가에 핀 작은 꽃의 색깔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의 내면이 무질서를 정돈하느라 모든 감각의 안테나를 안으로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풍...

머릿속 소음을 문장으로 옮겨 적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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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말은 사실 정보가 많다는 뜻보다는, 형체 없는 목소리들이 제각각 자기주장을 하며 소음을 내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이 소음들은 논리적인 문장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 단편적인 이미지와 파편화된 감정으로 내면의 구석구석을 부유한다. 어제 누군가에게 했던 말실수가 갑자기 떠오르다가도,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막막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렇듯 갈 곳 잃은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충돌할 때 발생하는 정신적인 고단함은 우리를 금방 지치게 만든다. 내가 굳이 펜을 들어 그 소음들을 문장으로 옮기려 애쓰는 이유는, 바로 이 무질서한 소리에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생각이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을 때는 실제보다 훨씬 거대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나 불안은 안개처럼 몸집을 불려 우리 마음 전체를 뒤덮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종이 위에 문장으로 적어 내려가는 순간, 기이할 정도로 그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막연한 불안'이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내일 회의에서 실수할까 봐 걱정된다"라는 구체적인 문장으로 치환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통째로 삼킬 것 같은 파도가 아니라 내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현실적인 과제가 된다. 기록은 추상의 영역에 머물던 소음을 구체적인 언어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정교한 필터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끝에 전해지는 물리적인 감각이다. 디지털 기기의 매끄러운 화면 위를 미끄러지는 자판 소리와 달리, 종이 위를 사각거리며 지나가는 펜촉의 진동은 내면의 속도를 늦춰주는 닻과 같다. 머릿속 소음은 빛의 속도로 이리저리 튀어 다니지만, 펜을 쥔 손의 속도는 한계가 있다. 그 물리적인 속도의 한계 덕분에 우리는 폭주하던 생각의 흐름을 멈춰 세우고, 지금 내가 적고 있는 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소란스러웠던 머릿속이 펜 끝의 정직한 움직임에 맞춰 서서히 정돈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고요한...

생각의 무게가 일상의 감각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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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문득 내 몸이 평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별히 격렬한 운동을 한 것도, 온종일 밖을 돌아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의자에 앉아 몇 가지 선택을 고민하고, 머릿속으로 다가올 일들을 그려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몸의 감각은 마치 수 킬로미터의 산길을 걷고 돌아온 사람처럼 지쳐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이 어떻게 실체적인 무게가 되어 나의 감각을 억누르는지, 그 기묘한 연결고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우리는 흔히 생각을 무형의 활동이라 여기지만, 사실 생각은 마음의 힘을 사용하는 아주 물리적인 노동이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 수만 가지 조각으로 흩어져 있을 때, 우리 몸은 그 무질서를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한다. 마치 배경에서 수십 개의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컴퓨터처럼, 내면은 정지해 있는 듯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쉼 없이 충돌하고 소모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적인 피로감은 곧바로 근육의 긴장과 호흡의 변화로 이어진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어깨는 안으로 말리고, 호흡은 얕아지며, 시선은 한곳에 머물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일상의 감각들은 점차 무뎌지기 시작한다. 머릿속의 소음이 커질수록 외부 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의 질감은 멀어진다. 정성껏 내린 커피의 향을 맡으면서도 그 향이 코끝에 닿기도 전에 내일의 걱정이 먼저 마음을 가로막는다. 감각은 현재에 머물고자 하지만, 생각은 자꾸만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으로 도약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불일치가 심해질수록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이 만들어낸 가상의 무게에 짓눌려 일상의 사소한 기쁨들을 놓치게 된다. 가만히 내 머릿속의 풍경을 관찰해보면,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난제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사소한 생각들의 잔상임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의 의미를 곱씹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