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소음을 문장으로 옮겨 적어야 하는 이유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말은 사실 정보가 많다는 뜻보다는, 형체 없는 목소리들이 제각각 자기주장을 하며 소음을 내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이 소음들은 논리적인 문장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 단편적인 이미지와 파편화된 감정으로 내면의 구석구석을 부유한다. 어제 누군가에게 했던 말실수가 갑자기 떠오르다가도,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막막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렇듯 갈 곳 잃은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충돌할 때 발생하는 정신적인 고단함은 우리를 금방 지치게 만든다. 내가 굳이 펜을 들어 그 소음들을 문장으로 옮기려 애쓰는 이유는, 바로 이 무질서한 소리에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생각이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을 때는 실제보다 훨씬 거대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나 불안은 안개처럼 몸집을 불려 우리 마음 전체를 뒤덮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종이 위에 문장으로 적어 내려가는 순간, 기이할 정도로 그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막연한 불안'이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내일 회의에서 실수할까 봐 걱정된다"라는 구체적인 문장으로 치환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통째로 삼킬 것 같은 파도가 아니라 내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현실적인 과제가 된다. 기록은 추상의 영역에 머물던 소음을 구체적인 언어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정교한 필터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끝에 전해지는 물리적인 감각이다. 디지털 기기의 매끄러운 화면 위를 미끄러지는 자판 소리와 달리, 종이 위를 사각거리며 지나가는 펜촉의 진동은 내면의 속도를 늦춰주는 닻과 같다. 머릿속 소음은 빛의 속도로 이리저리 튀어 다니지만, 펜을 쥔 손의 속도는 한계가 있다. 그 물리적인 속도의 한계 덕분에 우리는 폭주하던 생각의 흐름을 멈춰 세우고, 지금 내가 적고 있는 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소란스러웠던 머릿속이 펜 끝의 정직한 움직임에 맞춰 서서히 정돈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고요한 명상이 된다.
또한, 문장으로 적는 행위는 나 자신과의 정직한 대면을 가능케 한다. 머릿속 소음은 때때로 나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감정을 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은 수정하기 전까지는 결코 변하지 않는 객관적인 실체로 남는다. 내가 직접 적은 문장을 눈으로 다시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정말로 힘들어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문제의 본질을 궤뚫어 보는 순간이 찾아온다. 기록은 내면의 소란 속에 숨겨져 있던 진심을 발견하게 해주는 가장 정직한 거울인 셈이다.
적어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잊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중요한 것을 잊지 않으려 끊임없이 그 정보들을 되뇌며 애를 쓰곤 한다. 하지만 종이 위에 안전하게 그 내용을 보관하는 순간, 내면의 긴장은 비로소 그 조각들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휴식을 얻는다. "이 생각은 이제 이곳에 적혀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라는 무언의 약속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 소음이 잦아든 자리에는 비로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여유와, 내일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맑은 정신이 깃들게 된다.
오늘도 책상 위에 놓인 수첩을 펼치고, 하루를 떠돌던 소음들을 하나씩 문장으로 가두어본다. 문장이 늘어날수록 내면의 데시벨은 낮아지고, 방 안을 채우는 연필 굴러가는 소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도 좋다. 그저 내 안의 소음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 밤은 어제보다 훨씬 평온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록은 소란스러운 세상을 견디게 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나는 한 줄의 문장을 마칠 때마다 다시금 확인한다.